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선 아저씨 행방불명 사건 (문단 편집) == 판타지호 사건 == [[파일:mUQKGDj.jpg]] 반년이 지난 [[1992년]] [[11월 23일]], 스즈키의 전화에 불려나온 [[도시샤대학]] 교수 미와 시게오(三輪茂雄)와 학생 7명, [[아사히 신문]]의 통신 국장, 전날부터 밀착 취재해 온 [[후지 테레비]] 와이드쇼 '굿모닝! 나이스데이' 취재진, 그리고 스즈키의 지지자들이 [[비와호]] 호반에 모인 가운데, 풍선 아저씨는 [[헬륨]] 풍선 여러개를 단 '''판타지 호'''의 시험 비행을 시작했다. 원래 이 날의 명목은 단순한 시험 비행이었으며, 판타지 호가 120미터까지 상승하고 난 다음 일단 지상에는 착륙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16시 20분경 스즈키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주위의 제지를 뿌리친 채 습용 로프를 풀고 비와호 호수에서 [[미국]] 네바다주 샌드 마운틴을 향해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라고 묻는 미와 교수의 말에 그는 >'''미국이에요.(アメリカですよ)''' 라는 대답을 남겼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제트 기류를 타면 40시간 내에 [[미국]]에 도착할 거라 생각한다는 말을 했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풍선 아저씨는 가족들에게 휴대 전화로 "아침 해가 아름다워요"라는 연락을 보냈다. || [[파일:Rg1KDTh.jpg]] SOS 신호 후 발견되었을 때 뉴스 화면. || 하지만 그날 자정부터 판타지 호로부터 [[SOS]] 신호를 받았고, [[해상보안청]]의 수색기가 출동했다. 판타지 호는 25일 8시 30분의 [[미야기현]] 긴카산 동쪽 약 800km 해상에서 발견되었고, 수색 헬기를 본 스즈키는 헬기를 향해 앉아 있는 자세로 손을 흔들면서 SOS 신호를 중지했다. 당시 판타지호의 고도는 평균 2,500m로서 높았을 때는 4,000m 상공까지 도달했다고 하며 시속 70km의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신호도 중지되어 계속 비행할 의사가 있다고 판단한 데다가 약 3시간 뒤에 판타지 호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수색기는 추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위 뉴스 화면에도 있는 순간이 판타지 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사실 비와호에서 긴카산까지만 해도 직선거리로 무려 570km에 달하는 거리이고, 긴카산에서도 800km를 더 비행한데다 추적기가 3시간동안 감시까지 하는 동안에도 시속 70km의 속도로 비행을 한것까지 감안하면 무려 1,580km라는 거리를 비행한 것이 되니 이것도 나름대로 대단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비와호에서 목직지인 미국 네바다 주 샌드 마운틴까지는 무려 '''8,700km'''나 떨어져 있다. 1,580km나 왔어도 목적지의 반의 반도 다다르지 못한 것. 전문가는 실험 전에 [[풍선]]으로 [[미국]]에 간다니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며, 풍선이 미국까지 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아마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 긴카산은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섬이라서, 여기를 넘은게 확실한 이상, 바다에 추락해 사망했거나 살았어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조난당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1994년까지는 [[호적]]상에는 살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2001년 2월 1일자로 실종선고가 확정되었다. 즉, 일본 [[민법]]상 실종 후 7년이 경과하여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알래스카]]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루머]]로 밝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